신스틸러“아무도 안 해서 제가 했어요” 그래스페드 한우 전문가, ‘풀로만목장’ 조영현 대표

2022-08-11

풀만 먹는 소들의 터전, ‘풀로만 목장’

건초유통업 종사자, 건강한 소 키우기 직접 나서

방목과 계류… 新한국형 한우 사육 모델


풀로만 목장 조영현 대표 ⓒ조영현 대표



Q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귀농 13년차 농부, 전남 장흥 풀로만목장 대표 조영현입니다. 소의 전생애 동안 '풀'만 먹이는 *그래스페드 방식으로 한우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스페드(Grass fed) : ‘(가축이) 청초를 먹는다’는 뜻. 자연방목인증된 고기, 식품 등에 부여하는 표식

 



풀로만 목장 축사 내부 ⓒ조영현 대표



Q2. 서울에 있을 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몇 년간, 어떤 방식으로 귀농을 준비하셨는지요!


특별히 따로 귀농 준비를 하진 않았습니다. 전 직업인 무역업에 종사하던 시절에도 국내외 농촌을 돌며 소와 풀을 키우는 사람들을 만났으니까요. 사료 원료를 수입해 국내 농가에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축산업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죠.


50대 후반 즈음 ACX라는 미국 목초회사에서 4년간 일을 했어요. 그런데 미국을 오가며 장거리 비행하는 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체력적 소모가 커지니까 일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고요. 그때 귀농을 결심하게 됐어요.


2010년에 지금 있는 전남 장흥에 땅을 사면서 본격적으로 귀농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풀로만 목장 전경 ⓒ조영현 대표



Q3. 수많은 작물을 두고 목축업을 택하신 이유는요?


30년 가까이 사료 수입하는 일을 했기에 소, 목부, 축협과 가까운 환경에서 지냈고 그분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아쉬운 마음에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래스페드 방식을 권유했는데 아무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시더라고요.


마치  ‘나더러 하라고 (임무를) 남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축업을 시작하게 됐고요.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건강하게 소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여 기존 ‘그래스페드’에 방목과 *계류를 접목한, 새로운 목축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계류 : 소가 축사 안에 머무르는 것


이렇게 만든 풀로만 목장만의 목축 방식을 저는 ‘한국형 한우 사육 모델’ 이라 불러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이니까요.


우리 목장의 소들은 축사 안에서 양질의 풀을 배불리 먹고 난 다음 운동장 바깥에 나가 마음껏 뛰어놉니다. 그러다 비가 오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다시 축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럼 어마어마한 땅이 필요한 거 아니냐’ 하시는데요. 초원을 소 한 마리에게 50평 정도씩 확보해 주면 됩니다.


그럼 소들도 얼마든지 뛰어놀 수 있고 초원이 쉽게 황폐화되지도 않지요.


누군가로부터 벤치마킹한 것이 아닌, 제가 직접 고안한 독보적 기술로 키운 건강한 소를 많은 분들이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원에 나온 소들 ⓒ조영현 대표



Q4. 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요. 


한국은 미국이나 호주처럼 땅이 넓지 않잖아요. 방목을 해서 키우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보통 축사 크기가 4*8미터 혹은 5*10미터인데 이 좁은 공간에서 우리나라 소들은 평생을 살아가거든요.


소도 넓은 들판에서 뛰어 노는 야생성이 있는 동물인데 그 환경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건강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만큼 쉴 공간도 필요한 거죠. 사람처럼요. 


외국 영상들에서 넓고 푸른 들판에 소가 여유롭게 풀 뜯어 먹는 모습들 볼 수 있죠? 보기엔 참 멋있어 보이는데 그런 풍경마저 가까이 보면 현실인 걸 바로 깨닫게 됩니다.


외국의 방목되어 키워지는 소들은 비와 눈에 무방비 상태예요. 축사가 따로 없거든요. 핸드캡에 노출돼 있는 거죠. 환경 변화에 민감한 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요. 단순한 기후 변화에도요.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도 쉽죠. 때문에 ‘방목이 좋다, 축사가 나쁘다’ 단정지어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방목과 계류를 병행하는 것이고요. 그만큼 축사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축사에 센서가 있어서 비가 오면 지붕이 닫히고 해가 뜨면 지붕이 열리죠. 




Q5. 계류식, 방목을 병행하시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한우 관련 전문가들조차 소가 초원에서 뛰어 다니면 근육이 발달해서 고기가 질겨질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전혀 그런 현상은 없었어요.


한 번은 경상국립대학교 축산과학부 주선태 교수님 등 전문가들이 다같이 모여 우리 목장의 고기 성분 분석을 한 적이 있어요. 한우자조금협회를 통해서요.


한국, 호주, 미국의 그래스페드 소고기를 먹고난 후 채혈한 결과를 비교분석하는 실험으로 여섯 달 동안 몸의 변화를 봤던 거예요.

 

실험 결과 풀로만 목장 소고기가 가장 좋은 결과를 받았어요. 뛸 듯이 기뻤죠.


그 실험의 연장선으로 저희 목장 내에서 소고기 성분 분석 발표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남농업기술원과 순천향대학교 등 전국 유명 축산학 교수, 음식 칼럼니스트, 모 백화점의 직원까지 60명 가까운 인원이 저희 목장에 모였습니다.


여러 학술 발표를 진행한 후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까지도 한 교수님이 방목 방식이라 육질은 질길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소가 많이 뛰어다녔을 거라는 거죠.


심지어 제가 드린 큐브스테이크를 먹어보고는 “저한테는 연한 것만 골라 주신 것 아닌가요?”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참여인원이 60명이었는데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결국 모든 참여자들의 시식 후기를 듣고 인정하셨죠. ‘방목 소고기도 질기지 않을 수 있다!’


우리 고기는 ‘단단하다’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정확해요. 단단하다는 게 뭐냐면 고기를 씹으면 입안에 딱딱한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있어요. 단단했던 살이 씹을수록 알갱이처럼 변하면서 구수한 감칠맛을 내는 거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에 딱 들어맞습니다. 

 

산에서 나는 칡뿌리를 씹으면 뿌리 사이에서 녹말이 나오면서 알갱이가 굴러 다니는데 굉장히 구수하잖아요? 그 맛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풀로만목장 소고기 ⓒ조영현 대표



Q6. 귀농 후 가장 뿌듯했던 순간 & 힘들었던 순간?


목초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고 그것을 고객들이 알아주신 순간들이 가장 뿌듯했습니다.


병의 치료에 도움을 받았다거나, 허약했던 자녀가 우리 소고기를 먹고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쁩니다. 


제가 12년 동안 소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저희 목장의 소고기를 구매해주시는 고객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객들을 ‘공동생산자’라고 부릅니다. 

 

제가 정성들여 키운 소가 어떤 사람한테는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명심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객은 곡물알러지가 있었어요. 쌀, 밀, 보리를 전혀 못드시는 거죠. 그분이 먹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육류입니다. 그래서 좋은 소고기와 오리고기를 백방으로 찾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이 저희 고기를 처음 접하고, 찾으셨을 때 기쁨을 아낌없이 표현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고 참 감사했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분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하시는 분들도 저희 고기를 많이 찾아주세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걸 믿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거죠. 


어느덧 귀농 13 년차인데요. 그 사이 부부가 휴가 한 번을 같이 못 갔습니다. 갈 수가 없어요. 당장 누구 하나 없으면 소들이 배를 곯아야 하니까요.


백여 마리의 소에게 하루에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씩 세 번을 밥을 줘야하거든요. 풀이기 때문에 자동 배급에 한계가 있습니다.


외출을 하더라도 부부가 나누어 따로따로 해야 하고, 1박조차 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소에 대한 복지는 최고인데 실상 사람의 복지는 좋지 못한 상황인 거죠. 


어느 날 제가 병원에 입원해 도저히 운영이 힘든 상황이 되니까 오효석 목수라고 남양주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한달음에 달려와주었어요. 


어린 송아지들을 위한 목장을 바로 옆동네인 내동에 한 곳 더 열었는데 그곳을 봐주고 있어요. 


처음엔 며칠만 봐주겠다하고선 한두 달을 하더니 5년만 더 있다 가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후계자가 될 청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너무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입니다.


송아지 호춘이 ⓒ조영현 대표



Q7. 목축업에 가장 까다로운 계절과 환경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한 소들이라 여름이 가장 키우기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나 어린 송아지들은 스스로 체온 조절이 힘이들어 겨울철 건강관리가 매우 힘들어요.


봄·가을이 축산에는 가장 편하고 좋은 때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조영현 대표



Q8. 신중년, 귀농할 때 ‘이것’만은 잊지말자!


귀농은 농사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껏 배워놓은 농사 지식을 실전에 접목하려고 하면 막상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농사는 짓는 지역마다 지형마다 그 방법론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와보시면 가장 크게 느끼실 부분일 거예요. 그럼 뭐가 중요할까요? 저는 귀농한 마을에 빨리 ‘현지화’될 것을 우선적으로 권유드립니다.


마을의 이웃들과 친해지고 교류하는 것이 농사하실 때 스킬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웃들에게 필요한 재주와 마음을 가진 온전한 그 마을의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귀농 전에 전국에 명인이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몇 년씩 배우는 분들도 있는데요. 명인의 동네에서는 그 기술이 통할지 몰라도 동네가 달라지면 그 기술이 안 통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왜냐하면 토질, 일기, 기후가 지역마다 전부 다르거든요. 


그래서 기술과 작물 이론을 배우려고 몇년씩 투자하시는 것보다는, 귀농을 결심하셨으면 빨리 그 마을의 현지화가 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에 그 마을에서 하고자 하는 작물을 제일 잘하고 많은 소득을 올리는 분한테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혼자하는 것보단 훨씬 빠른 길입니다.


마을에서 자리를 잡는 건 그리 큰 일은 아닙니다. 어르신들 읍내 나가실 때 운전해서 모셔다 드린다거나 전기, 전자제품을 봐드린다거나 그런 사소한 것들이라도 도움드리다보면 분명 본인도 도움을 받게 되는 순간이 와요. 


농부가 되기보다 그 마을의 주민이 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풀로만 목장 ⓒ조영현 대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12년간 굳건히 걸어온

조영현 대표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어린 말씀들,

잊지 않겠습니다 :)

written by PYO

사진 제공 조영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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