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야박한 게 뭐죠? 콩나물국밥집 '일흥옥'
#술 - 한 병 시켰는데 상다리가 부러졌어요 ‘홍집’
#면 - 절대불변의 맛, '뽀빠이냉면'
#빵 - 보리로 건강한 빵 만들어요 '빵굽는 오남매'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음식이다. 그것도 맛있는 음식. 미식가들에게 ‘맛집’을 검색하는 건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다. 조금 더 괜찮은, 기억에 오래 남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시간과 손품이 드는 것쯤 아무 부담이 없다. 당신이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이라면 전북 군산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혹자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온갖 미디어와 입소문을 통해 알고 있는 군산의 맛집은 이성당, 한일옥이 전부일 테니까. 실제로 군산 원도심에 가보면 두 가게 앞은 항상 인파가 ‘압도적’으로 몰린다. 마치 이 두 곳만이 군산의 빵과 밥을 책임지는 것처럼. 거기에 초원사진관까지 들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군산을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루만 보고 외면하기엔 군산은 가진 자원이 정말 많은 도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도락을 누릴 수 있는 ‘먹방’의 고장. 군산 먹부림의 ‘뿌리’를 형성한 노포 네 곳을 통해 이제껏 미처 알지 못했던 군산 음식의 진 면모를 알아보자. 그들이 만든 음식,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곧 군산의 맛이고 역사니까.
#밥 – 야박한 게 뭐죠? 확고한 경영철학, 콩나물국밥집 일흥옥
뜨끈한 방에서 몸을 데우고 싶을 뿐, 발끝 하나 움직이기 싫은 겨울 아침 출근길. 바쁜 걸음을 옮기던 찰나 어슴푸레 빛나는 국밥집 불빛에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한 그릇만 먹고 갈까'
포근한 수증기와 구수한 향,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가 심히 매혹적이다. 숙취로 속이 더부룩한 상황이면 더더욱 간절한 따뜻한 국물.
군산 최초의 최장수 콩나물국밥집으로서 30년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아침 군산 주민들에게 행복한 고민을 선사한 #일흥옥 2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오래가게’로 선정돼 인근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도 친숙한 노포가 되었다.
토렴식 국밥 제조 과정. 국물을 여러 차례 나눠 붓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이 보인다. 분주히 뚝배기에 국물을 붓는 모습, 그 위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김에 금세 허기가 진다. 일흥옥 단 하나의 메뉴인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파스텔톤의 콩나물, 달걀 노른자와 빨간 고춧가루, 초록색 파가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보자마자 숟가락을 들게 하는 비주얼. 뜨거운 국물을 뚝배기에 여러 차례 나누어 붓는 토렴식 국밥이라 바로 먹어도 입 천장을 데일 일은 없다.
취향에 따라 노른자를 터뜨릴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실수로 터뜨려도 당황할 필요 없다. 육수를 추가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수, 밥, 콩나물은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물론 남겨선 안된다) 아삭한 콩나물과 고명, 부드러운 쌀밥을 양껏 한입에 넣고 우걱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혼자 출장 온 설움도 사르르 녹게 하는 이 맛.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이 완벽한 맛의 창시자가 궁금해졌다. 오전 10시 30분, 점심 손님이 몰아치기 전 송강석 한연우 대표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다행히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Q. 일흥옥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1975년 처음 문을 열었던 일흥옥을 1994년 장인어른이 인수하셨다. 그후 사이사이 일손을 돕다가 부부가 함께 한 지는 10여년 됐다. 그전엔 장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오로지 장인어른 말고는 일을 배울 사람이 없었다. 장인 어른, 장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게를 여셨다. 지독히도 열심히 하셨다. 그걸 보고 배워선지 우리 부부도 쉴새 없이 일하고 있다.
Q.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새벽5시부터 오후3시까지. 개업 이래 이 시간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세상에 많은 형태의 노동자가 있는데 야간/새벽 근무자는 누구보다 춥고 쓸쓸한 시간에 출퇴근 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영업 시간을 바꿀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 그리고 어떤 가게든 그렇겠지만 문을 닫았다고 해서 쉬는 건 아니다. 재료 공수를 하는 등 다음날 장사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한다. 직접 완도에 가서 육수 재료를 사기도 한다.
일흥옥 차림표, 간소하다
Q. 메뉴가 단출하다. 이유가 있을까.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만 하자' 주의다. 롱런의 비결을 물어볼 때마다 “콩나물국밥 하나만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만 하는 대신 ‘커스터마이징’에 강하다. 손님마다 특징을 기억해서 콩나물, 밥의 양을 더 드린다든지 고춧가루 양을 적게 한다든지. 그럼 그 손님에겐 우리 콩나물국밥이 인생 국밥‘이 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입맛도 바뀐다. 노포라고 해서 옛날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연구한다. 옛날엔 먹을 게 없어서 배부르게 먹는 게 중요했다면 요즘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식가가 되지 않았나. 우리 가게의 맛을 알아주시는 분들은 먼 곳에서도 일부러 드시러 오기도 한다.
Q. 단골 손님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손님들이 많다. 다른 도시에 볼 일이 있어 잠깐 군산을 지나는 건데도 일부러 들러주시는 분들도 있고,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메뉴판엔 없는 특별 메뉴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일명 '애기국밥'은 작은 그릇에 센 양념들을 빼고 순한 재료만 담아 무료로 제공된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어린이 손님들이 이젠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오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고 고맙다.
애기국밥용 그릇
그런 만큼 우리 가게와 손님간 유대관계도 높다. 주중에 닫는다고, 저녁 장사 안한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없다. 우리 가게 음식과 서비스에 집중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다.
Q. 미래에도 일흥옥 콩나물국밥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일흥옥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크다.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딸은 가업을 이어가고 싶다고도 한다. 그 표정이 꽤 진지해서 3대째 승계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 당장은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일흥옥 국밥을 사랑해주시는 손님들을 보면 무한의 힘을 얻고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정말 감사하다. 출근길, 혹은 누군가의 퇴근길에 소확행이 될 수 있도록 '야박하게 장사하지 말자'는 오랜 경영철학을 유지하고 연구해 나갈 것이다.
국밥의 힘은 위대하다. 하루의 시작과 끝. 언제든 먹기만 하면 고달픔을 잊게 한다. 국밥 한 그릇으로 위로와 기쁨을 건네는 일흥옥,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주길!
※일흥옥 위치정보
일흥옥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7길 25 일흥옥
#술 – 한 병 시켰는데 상다리가 부러졌어요 '홍집'
저녁 먹기 조금 이른 오후 5시 신영시장 골목은 썰렁했다. 혼밥러라 하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건지 인파가 붐비기 전 식사할 수 있는 가게를 찾다가 '홍집'을 발견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TV를 보던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신영시장 골목
홍집 전경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 서울에서 왔어요
"어째 혼자 다녀. 같이 먹을 사람을 데리고 오지!"
홍집의 아성을 익히 듣고 현금까지 인출해왔는데 필자를 보는 사장님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저 애가 혼자 반주를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남다른 포스에 순간 목이 맸다. '친구가 없어서요…' 말하려던 찰나 들려오는 한 마디.
"목 말라? 물한잔 줘?"
맥주잔, 막걸리 주전자
"맥주 한 병 주세요!" 의심을 거두기 위해 몇 번 와본 사람인 양 씩씩하게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갖가지 음식이 한 상을 가득 채웠다.
"혼자니께 적당히 먹고 가~"
혼자서 먹기에 적당한 양이 아닌 것 같은데... 소라숙회에 가오리찜, 고소한 번데기와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한상차림을 스캔하고나니 우려와 달리 금방 해치울 수 있었다. 시원한 맥주에 감칠맛 나는 안주를 누가 마다할까!
등따시고 배부르니 슬슬 긴장이 풀렸다. 사장님과 조금 더 긴 대화를 시도했다.
Q. 술 한 병에 푸짐한 상차림, 게다가 무한리필 시스템. 이렇게 장사해도 괜찮은(?) 건지
다른 손님들도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 자리에서만 30년, 아니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운영 방식이라 바꿀 생각은 없다. 만약 서울에서 장사했다면 지금처럼 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Q. 따로 휴일이 없는 것 같던데
그냥, 가게를 일터이자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집도 바로 이 근방이라 나오기 그리 힘들지 않다. 20대에 신영동에 와서 40대에 홍집을 열고 지금은 70대가 됐다. 이 동네 안에서 딱 한 번 이사하고 쭉 살아왔다. 그러니 일터와 집의 경계가 없다. 휴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Q. 쭉 혼자서 운영해 온 건지
바깥 양반은 다른 일을 한다. 대부분 혼자서 해왔다. 신기하게 격일로 손님의 수가 다르다. 하루는 많고 하루는 적고. 그래서 혼자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오늘은 적은 날이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바쁜 날은 꼬박 저 부엌에 서 있어야 한다. (자네 오늘 운이 좋은겨! 하하하하)
코로나 이전 홍집 운영 모습. 마스크를 제외하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세컨드투모로우 아카이브)
Q. 군산 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올 것 같다.
인터넷 보고 많이 찾아오더라. 그래선지 외국 손님들도 꽤 많았다. 코로나 발생 전, 일본의 잡지사에서 취재를 왔었다. 서툰 한국말을 섞어 가며 나와 통역사에게 열심히 질문을 던지던 여기자가 기억에 남는다. 입에 안 맞을 법도 한데 안주를 남김없이 싹 먹고 갔다. 나에게 그냥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신선하게 바라봐주고 찾아와주니 고맙고 즐겁다.
Q. 앞으로도 홍집을 볼 수 있을까.
무릎이 아파서 관절 수술을 했다. 그후론 솔직히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할 생각이다. 40대부터 꾸준히 해왔으니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하고 싶다. 다음엔 꼭 친구하고 와라. 그땐 군산 특산물 박대구이도 해줄 테니.
송정님 사장님
빨간색이 좋아서 가게 이름을 홍집으로 지었다는 송정님 사장님. 작명 센스마저 군더더기 없는 매력쟁이시다. 군산의 역사와 매력을 응집한 장소, 사람을 알고 싶다면 꼭 들러보길 바란다.
※ 홍집 위치 정보
홍집
전라북도 군산시 동신영길 47-3 홍집
프로 혼밥러의 노포 탐방기 2 - '뽀빠이냉면', '빵굽는오남매' 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written by PYO
#밥 - 야박한 게 뭐죠? 콩나물국밥집 '일흥옥'
#술 - 한 병 시켰는데 상다리가 부러졌어요 ‘홍집’
#면 - 절대불변의 맛, '뽀빠이냉면'
#빵 - 보리로 건강한 빵 만들어요 '빵굽는 오남매'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음식이다. 그것도 맛있는 음식. 미식가들에게 ‘맛집’을 검색하는 건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다. 조금 더 괜찮은, 기억에 오래 남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시간과 손품이 드는 것쯤 아무 부담이 없다. 당신이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이라면 전북 군산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혹자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온갖 미디어와 입소문을 통해 알고 있는 군산의 맛집은 이성당, 한일옥이 전부일 테니까. 실제로 군산 원도심에 가보면 두 가게 앞은 항상 인파가 ‘압도적’으로 몰린다. 마치 이 두 곳만이 군산의 빵과 밥을 책임지는 것처럼. 거기에 초원사진관까지 들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군산을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루만 보고 외면하기엔 군산은 가진 자원이 정말 많은 도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도락을 누릴 수 있는 ‘먹방’의 고장. 군산 먹부림의 ‘뿌리’를 형성한 노포 네 곳을 통해 이제껏 미처 알지 못했던 군산 음식의 진 면모를 알아보자. 그들이 만든 음식,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곧 군산의 맛이고 역사니까.
#밥 – 야박한 게 뭐죠? 확고한 경영철학, 콩나물국밥집 일흥옥
뜨끈한 방에서 몸을 데우고 싶을 뿐, 발끝 하나 움직이기 싫은 겨울 아침 출근길. 바쁜 걸음을 옮기던 찰나 어슴푸레 빛나는 국밥집 불빛에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한 그릇만 먹고 갈까'
포근한 수증기와 구수한 향,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가 심히 매혹적이다. 숙취로 속이 더부룩한 상황이면 더더욱 간절한 따뜻한 국물.
군산 최초의 최장수 콩나물국밥집으로서 30년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아침 군산 주민들에게 행복한 고민을 선사한 #일흥옥 2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오래가게’로 선정돼 인근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도 친숙한 노포가 되었다.
토렴식 국밥 제조 과정. 국물을 여러 차례 나눠 붓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이 보인다. 분주히 뚝배기에 국물을 붓는 모습, 그 위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김에 금세 허기가 진다. 일흥옥 단 하나의 메뉴인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파스텔톤의 콩나물, 달걀 노른자와 빨간 고춧가루, 초록색 파가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보자마자 숟가락을 들게 하는 비주얼. 뜨거운 국물을 뚝배기에 여러 차례 나누어 붓는 토렴식 국밥이라 바로 먹어도 입 천장을 데일 일은 없다.
취향에 따라 노른자를 터뜨릴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실수로 터뜨려도 당황할 필요 없다. 육수를 추가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수, 밥, 콩나물은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물론 남겨선 안된다) 아삭한 콩나물과 고명, 부드러운 쌀밥을 양껏 한입에 넣고 우걱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혼자 출장 온 설움도 사르르 녹게 하는 이 맛.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이 완벽한 맛의 창시자가 궁금해졌다. 오전 10시 30분, 점심 손님이 몰아치기 전 송강석 한연우 대표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다행히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Q. 일흥옥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1975년 처음 문을 열었던 일흥옥을 1994년 장인어른이 인수하셨다. 그후 사이사이 일손을 돕다가 부부가 함께 한 지는 10여년 됐다. 그전엔 장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오로지 장인어른 말고는 일을 배울 사람이 없었다. 장인 어른, 장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게를 여셨다. 지독히도 열심히 하셨다. 그걸 보고 배워선지 우리 부부도 쉴새 없이 일하고 있다.
Q.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새벽5시부터 오후3시까지. 개업 이래 이 시간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세상에 많은 형태의 노동자가 있는데 야간/새벽 근무자는 누구보다 춥고 쓸쓸한 시간에 출퇴근 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영업 시간을 바꿀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 그리고 어떤 가게든 그렇겠지만 문을 닫았다고 해서 쉬는 건 아니다. 재료 공수를 하는 등 다음날 장사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한다. 직접 완도에 가서 육수 재료를 사기도 한다.
일흥옥 차림표, 간소하다
Q. 메뉴가 단출하다. 이유가 있을까.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만 하자' 주의다. 롱런의 비결을 물어볼 때마다 “콩나물국밥 하나만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만 하는 대신 ‘커스터마이징’에 강하다. 손님마다 특징을 기억해서 콩나물, 밥의 양을 더 드린다든지 고춧가루 양을 적게 한다든지. 그럼 그 손님에겐 우리 콩나물국밥이 인생 국밥‘이 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입맛도 바뀐다. 노포라고 해서 옛날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연구한다. 옛날엔 먹을 게 없어서 배부르게 먹는 게 중요했다면 요즘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식가가 되지 않았나. 우리 가게의 맛을 알아주시는 분들은 먼 곳에서도 일부러 드시러 오기도 한다.
Q. 단골 손님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손님들이 많다. 다른 도시에 볼 일이 있어 잠깐 군산을 지나는 건데도 일부러 들러주시는 분들도 있고,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메뉴판엔 없는 특별 메뉴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일명 '애기국밥'은 작은 그릇에 센 양념들을 빼고 순한 재료만 담아 무료로 제공된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어린이 손님들이 이젠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오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고 고맙다.
애기국밥용 그릇
그런 만큼 우리 가게와 손님간 유대관계도 높다. 주중에 닫는다고, 저녁 장사 안한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없다. 우리 가게 음식과 서비스에 집중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다.
Q. 미래에도 일흥옥 콩나물국밥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일흥옥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크다.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딸은 가업을 이어가고 싶다고도 한다. 그 표정이 꽤 진지해서 3대째 승계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 당장은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일흥옥 국밥을 사랑해주시는 손님들을 보면 무한의 힘을 얻고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정말 감사하다. 출근길, 혹은 누군가의 퇴근길에 소확행이 될 수 있도록 '야박하게 장사하지 말자'는 오랜 경영철학을 유지하고 연구해 나갈 것이다.
국밥의 힘은 위대하다. 하루의 시작과 끝. 언제든 먹기만 하면 고달픔을 잊게 한다. 국밥 한 그릇으로 위로와 기쁨을 건네는 일흥옥,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주길!
※일흥옥 위치정보
일흥옥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7길 25 일흥옥
#술 – 한 병 시켰는데 상다리가 부러졌어요 '홍집'
저녁 먹기 조금 이른 오후 5시 신영시장 골목은 썰렁했다. 혼밥러라 하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건지 인파가 붐비기 전 식사할 수 있는 가게를 찾다가 '홍집'을 발견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TV를 보던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신영시장 골목
홍집 전경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 서울에서 왔어요
"어째 혼자 다녀. 같이 먹을 사람을 데리고 오지!"
홍집의 아성을 익히 듣고 현금까지 인출해왔는데 필자를 보는 사장님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저 애가 혼자 반주를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남다른 포스에 순간 목이 맸다. '친구가 없어서요…' 말하려던 찰나 들려오는 한 마디.
"목 말라? 물한잔 줘?"
맥주잔, 막걸리 주전자
"맥주 한 병 주세요!" 의심을 거두기 위해 몇 번 와본 사람인 양 씩씩하게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갖가지 음식이 한 상을 가득 채웠다.
"혼자니께 적당히 먹고 가~"
혼자서 먹기에 적당한 양이 아닌 것 같은데... 소라숙회에 가오리찜, 고소한 번데기와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한상차림을 스캔하고나니 우려와 달리 금방 해치울 수 있었다. 시원한 맥주에 감칠맛 나는 안주를 누가 마다할까!
등따시고 배부르니 슬슬 긴장이 풀렸다. 사장님과 조금 더 긴 대화를 시도했다.
Q. 술 한 병에 푸짐한 상차림, 게다가 무한리필 시스템. 이렇게 장사해도 괜찮은(?) 건지
다른 손님들도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 자리에서만 30년, 아니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운영 방식이라 바꿀 생각은 없다. 만약 서울에서 장사했다면 지금처럼 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Q. 따로 휴일이 없는 것 같던데
그냥, 가게를 일터이자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집도 바로 이 근방이라 나오기 그리 힘들지 않다. 20대에 신영동에 와서 40대에 홍집을 열고 지금은 70대가 됐다. 이 동네 안에서 딱 한 번 이사하고 쭉 살아왔다. 그러니 일터와 집의 경계가 없다. 휴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Q. 쭉 혼자서 운영해 온 건지
바깥 양반은 다른 일을 한다. 대부분 혼자서 해왔다. 신기하게 격일로 손님의 수가 다르다. 하루는 많고 하루는 적고. 그래서 혼자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오늘은 적은 날이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바쁜 날은 꼬박 저 부엌에 서 있어야 한다. (자네 오늘 운이 좋은겨! 하하하하)
코로나 이전 홍집 운영 모습. 마스크를 제외하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세컨드투모로우 아카이브)
Q. 군산 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올 것 같다.
인터넷 보고 많이 찾아오더라. 그래선지 외국 손님들도 꽤 많았다. 코로나 발생 전, 일본의 잡지사에서 취재를 왔었다. 서툰 한국말을 섞어 가며 나와 통역사에게 열심히 질문을 던지던 여기자가 기억에 남는다. 입에 안 맞을 법도 한데 안주를 남김없이 싹 먹고 갔다. 나에게 그냥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신선하게 바라봐주고 찾아와주니 고맙고 즐겁다.
Q. 앞으로도 홍집을 볼 수 있을까.
무릎이 아파서 관절 수술을 했다. 그후론 솔직히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할 생각이다. 40대부터 꾸준히 해왔으니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하고 싶다. 다음엔 꼭 친구하고 와라. 그땐 군산 특산물 박대구이도 해줄 테니.
송정님 사장님
빨간색이 좋아서 가게 이름을 홍집으로 지었다는 송정님 사장님. 작명 센스마저 군더더기 없는 매력쟁이시다. 군산의 역사와 매력을 응집한 장소, 사람을 알고 싶다면 꼭 들러보길 바란다.
※ 홍집 위치 정보
홍집
전라북도 군산시 동신영길 47-3 홍집
프로 혼밥러의 노포 탐방기 2 - '뽀빠이냉면', '빵굽는오남매' 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written by 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