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 로컬에서 ‘내 삶’을 사는 법 - 박우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 동네책방 ‘우주소년’에서 배운 ‘대안적 삶’, ‘로컬의 가치’
- 로컬 문화공간 조성, 혼자가 아닌 여럿이 고민해야
- ‘앞’보다는 ‘옆’을 볼 줄 아는, 잔잔한 인사이더!
박우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박우현
Q.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로컬의 삶을 다루는 웹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박우현입니다. 이곳에서 편집장을 맡은지는 1년 정도 됐고, 그전부터 주로 해왔던 일은 ‘콘텐츠 기획자’였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라디오 구성작가, 잡지 기자를 하다가 경력이 좀 쌓이고 나선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고 번역도 했습니다. 1인 출판사로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참 많은 걸 해온 것 같네요 ☺
주로 글을 만져왔지만 최근 ‘로컬’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또다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를 만들다보니 제 전공이 인문 계열인 줄 아는 분이 많은데요. 대학시절엔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건축을 인문학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건물이든 글이든 창작할 때 모두 ‘짓는다’고 하잖아요? ‘인간의 삶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건축과 글의 공통분모가 많다고 생각해요.
Q. 로컬콘텐츠가 아직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로컬 콘텐츠는 한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글, 영상 등의 매체와 프로젝트를 뜻합니다. 최근 지방 소멸 문제가 대두되고 있죠. 지방에 만연해 있던 인구 감소 현상이 수년간 축적돼서 지금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고요.
최근 들어 정부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고 쇠락하는 로컬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행정안전부 주도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지역의 활기를 되찾도록 하고 있구요.
중소벤처기업부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소규모 창업을 열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빵집, 카페, 브루어리, 콘텐츠 제작 등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분야를 기반으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토교통부에서는 ‘도시재생뉴딜’을 통해 지역, 공간을 재생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로컬 그라운드’는 이런 사업들과 관련된 로컬 콘텐츠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로컬 사업이 부흥하는 지역은 왜 이런 흐름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과연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들은 잘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죠. 또 성과가 어떻고 문제는 없는지도 보고 있구요 .
사례를 발굴하고 소개하고 로컬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도 합니다. 우리가 보통 ‘로컬’이라 하면 지방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모든 지방이 다 로컬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서울은 로컬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거든요.
요즘 MZ세대들이 소비하는 로컬이라는 단어는 결국 ‘지역성’ 같아요. 내가 서울에 살지만 경리단길이나 연남동이나 연희동처럼 지역성이 뚜렷한, 그렇게 뭔가를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강조하는 틀에서 벗어나서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는 장소가 곧 로컬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로컬은 어떻게 보면 대안적 공간이자 기회의 공간이 되겠죠. 하지만 그게 로컬이든 도시든 중요한 건 태도 같아요. 지금까지 길들여져 왔던 소비 위주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태도. 그게 이루어지는 공간이 로컬이라고 볼 수 있죠.
Q. 로컬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16년 전, ‘아름다운가게’라는 시민단체에서 간사로 일했었어요. 제가 했던 일은 공정무역커피 사업이었는데요. 그때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커피를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적 삶’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 시기 제 딸의 학교를 알아보다가 자연스럽게 ‘대안학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런데 일반 사립 대안학교는 당시 제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괜찮은 곳이 없을까… 계속 알아보다가 대안형 혁신학교가 눈에 띄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한 반면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학교 주변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일생을 서울 강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는 게 겁이 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학교가 용인 수지, 경기도 분당 경계에 있었고 그 인근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아파트만 있는 베드타운이더라고요.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아름다운가게를 나와 제 콘텐츠사업을 기획하던 중이었는데 사무실까지도 이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더라고요.
서울보다 월세도 싸고 훨씬 넓은 건물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면적이 늘어나니 사무실만으로 쓰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민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어볼까 싶었어요. 다만 ‘뭘’ 만드느냐가 중요했죠.
아파트촌으로 이뤄진 동네는 상대적으로 문화공간이 부족합니다.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울을 가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죠. 딸아이의 학교를 통해 알게 된 학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아쉬움을 저만 느끼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동네 주민 누구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평소 좋아하던 커피와 책을 기반으로 난생 처음 공간 기획에 도전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이디어와 도움을 주셨어요. 혼자 기획하고 조성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절약됐습니다. 그렇게 동네 카페이자 책방이자 아지트, ‘우주소년’이 탄생했습니다.
팬데믹 전, 서촌 역사책방과 콜라보로 진행한 북콘서트 ⓒ박우현
아마 서울에만 있었다면 ‘로컬’에 큰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 익숙한 곳이니까 특별히 동네의 특징이라든지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거든요. 제2의 삶의 터전이 된 ‘우주소년’에서 다양한 문화 탐구 활동을 하면서 ‘지역’, ‘로컬’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방을 열고 주민들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었어요. 팀을 만들고 동네 이름의 어원부터 파고들었습니다. 동네 곳곳 가게나 버스정류장에 ‘머내’란 단어가 정말 많이 쓰이는데 왜 ‘머내’라 부르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알고보니 옛 이름이 ‘원천遠川’이었던 거예요. 멀 원, 내 천. ‘원천동’의 순 한글 표기였던거죠. 현재 행정구역 상 수지 동천동, 분당 동원동이 원래는 한 동네였던 것도 알 수 있게 됐구요. 이렇게 하나 하나 파고드니 로컬이 가진 이야깃거리가 상당하더라고요.
탐구팀은 ‘머내여지도’라는 청년 주축의 역사 모임으로 발전해, 지금도 동네를 기억하기 위한 여러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 동네의 뿌리를 알아가며 주민들도 저도 우리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저는 이 경험을 토대로 더 넓은 범위의 로컬 콘텐츠들을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낯선 곳에 이사 와서 처음 걱정과는 달리 제 스스로도 큰 성장을 이룬 셈이죠.
Q. 우주소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주민들 역시 특별한 아지트로 여겼다구요! 어떤 추억들이 있나요?
맞습니다. 단순한 책방을 넘어 북콘서트, 지역 스터디, 토론을 주기적으로 하는 이야기의 장이 되니까 점점 참여하는 인원이 늘었고 외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다보니 유지 관리 자체가 힘든 순간이 오더라고요.
우주소년을 열고나서 4년쯤 지나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이제는 닫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구요. 그런데 오시는 분마다 “이렇게 닫을 순 없다”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는 거예요. 만감이 교차하던 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시작됐습니다.
오셨던 분들, 좋은 기억을 가지신 분들 너나 할 것 없이 50만 원, 100만 원 아낌없이 모아주시면서 우주소년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동네의 아지트를 지켜낸 거죠. 우주소년이 온전히 마을의 것이 되면서 저는 운영에선 물러나게 됐지만 모두를 위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청년협동조합이 주민들과 협력해서 우주소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지역 청년들이 ‘갭이어’를 활용하기 좋은 구조 또한 만들어진 거죠. 수지구청과 관내 학교들도 우주소년을 지원해주고 있고요.
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나니 ‘지역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습니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물리적인 공간의 재배치나 리모델링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정립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혼자 했다면 몰랐을 텐데 주민들이 다같이 관심을 가졌기에 그 가치들을 깨닫을 수 있었어요.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들에겐 이 아파트촌이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거든요. 그걸 알기에 많은 분들이 작은 마을 커뮤니티를 지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당장 이익만 생각했다면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일들이었죠.
이 멋진 분들과 수많은 추억을 함께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대책없이(?) 벌였던 일들인데요. 한 번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란 책을 읽고 주민끼리 북토크를 하다가 저자를 직접 모시고 북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이 책이 일본 도서라는 걸 알았음에도 내용이 좋은 나머지 그런 제안이 나왔던 거죠.
작은 동네 책방에서 무슨 힘으로 일본의 유명 작가를 모실 수 있겠나 싶어 차츰 잊어가던 중 반전이 펼쳐졌습니다. 주민 중 한 분이 일본에 출장을 간 김에 직접 저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섭외를 한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 와타나베 씨로부터 긍정적 답변이 왔고요. 다같이 즐겁게 읽은 책이라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습니다. 비행편, 숙박 경비도 걱정이었고 참여를 원하는 분들을 모두 초대하기엔 우주소년 공간이 너무 작았거든요.
그때도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저자 초빙 비용을 모았습니다. 인근 학교는 일반인들에게도 강당을 열어 장소를 제공해주었고요.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북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책의 배경이 된 다루마리 빵집을 탐방하는 투어도 만들었어요. 투어 안에서 프로그램을 늘려가며 꽤 오랜 기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와타나베 씨와 연락을 이어가며 로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와타나베 부부와 박우현 편집장 ⓒ박우현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박우현
Q. 로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셨는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나 만들어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리제너레이션 사업이에요. 지역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새롭게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 앞서 소개한 와타나베 씨 역시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아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책에 풀어냈던 건데요.
팬데믹 전, 한창 투어를 진행할 때 저한테 제안을 하나 하더라구요. “자주 오는 만큼 이 마을의 남는 건물을 구입해서 탐방대 숙소로 사용하는 게 어떻겠냐.” 실제로 작은 지역이라 그런지 관리가 잘된 정갈한 고택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한다든지. 다만 아쉬운 건 ‘지속성’이에요. 새로 마을을 만들었지만 정작 찾아오는 사람은 적은 곳도 많으니까요.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가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 세대가 로컬의 청년마을에 가서 단순한 여행이 아닌 ‘한달살기’같은 개념으로 쉼과 삶을 누려보는 거죠. 관광을 넘어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로컬이 배경이 아닌 주제가 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웹드라마를 기획해보고 있는데요. 로컬에 관심도 없고 도시에서의 생존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던 한 인물이 삶의 큰 실패를 경험하고 로컬로 내려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장르는 로맨틱코미디가 될 것 같은데 아직 구상 중이니 스포일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Q.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다방면에 재주 많은 제너럴리스트가 떠오르는데요! 꿈 많고 하고 싶은 일 많은 50+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너럴리스트라고 멋지게 이야기해주셨지만 사실 제 나이를 잊고 살다 다양한 것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선 “너도 이제 나이 들었다. 새로운 거 그만해”라고 하는 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떠나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중년은 자녀와 가족, 일에 집중하다가 정작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잊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사회의 환경과 분위기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만들기도 했고요. 이런 상황에 제가 감히 “인생 2막, 새로운 삶을 도전해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분은 글을 써보고 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분은 여행을 다녀보셨으면 좋겠어요. 작은 시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랑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어서요. 같이 늙어가는 동료, 동지, 친구들… 인생을 같이 갈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맹목적으로 앞만 보기보다 옆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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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과 사람에 진심인 박우현 편집장님!
앞으로도 다양한 로컬 콘텐츠로
또다른 이야기 공간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 제공
박우현 님 인스타그램
@ujooso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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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PYO
[신스틸러] 로컬에서 ‘내 삶’을 사는 법 - 박우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박우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박우현
Q.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로컬의 삶을 다루는 웹진 ‘로컬그라운드’ 편집장 박우현입니다. 이곳에서 편집장을 맡은지는 1년 정도 됐고, 그전부터 주로 해왔던 일은 ‘콘텐츠 기획자’였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라디오 구성작가, 잡지 기자를 하다가 경력이 좀 쌓이고 나선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고 번역도 했습니다. 1인 출판사로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참 많은 걸 해온 것 같네요 ☺
주로 글을 만져왔지만 최근 ‘로컬’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또다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를 만들다보니 제 전공이 인문 계열인 줄 아는 분이 많은데요. 대학시절엔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건축을 인문학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건물이든 글이든 창작할 때 모두 ‘짓는다’고 하잖아요? ‘인간의 삶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건축과 글의 공통분모가 많다고 생각해요.
Q. 로컬콘텐츠가 아직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로컬 콘텐츠는 한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글, 영상 등의 매체와 프로젝트를 뜻합니다. 최근 지방 소멸 문제가 대두되고 있죠. 지방에 만연해 있던 인구 감소 현상이 수년간 축적돼서 지금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고요.
최근 들어 정부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고 쇠락하는 로컬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행정안전부 주도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지역의 활기를 되찾도록 하고 있구요.
중소벤처기업부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소규모 창업을 열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빵집, 카페, 브루어리, 콘텐츠 제작 등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분야를 기반으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토교통부에서는 ‘도시재생뉴딜’을 통해 지역, 공간을 재생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로컬 그라운드’는 이런 사업들과 관련된 로컬 콘텐츠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로컬 사업이 부흥하는 지역은 왜 이런 흐름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과연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들은 잘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죠. 또 성과가 어떻고 문제는 없는지도 보고 있구요 .
사례를 발굴하고 소개하고 로컬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도 합니다. 우리가 보통 ‘로컬’이라 하면 지방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모든 지방이 다 로컬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서울은 로컬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거든요.
요즘 MZ세대들이 소비하는 로컬이라는 단어는 결국 ‘지역성’ 같아요. 내가 서울에 살지만 경리단길이나 연남동이나 연희동처럼 지역성이 뚜렷한, 그렇게 뭔가를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강조하는 틀에서 벗어나서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는 장소가 곧 로컬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로컬은 어떻게 보면 대안적 공간이자 기회의 공간이 되겠죠. 하지만 그게 로컬이든 도시든 중요한 건 태도 같아요. 지금까지 길들여져 왔던 소비 위주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태도. 그게 이루어지는 공간이 로컬이라고 볼 수 있죠.
Q. 로컬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16년 전, ‘아름다운가게’라는 시민단체에서 간사로 일했었어요. 제가 했던 일은 공정무역커피 사업이었는데요. 그때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커피를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적 삶’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 시기 제 딸의 학교를 알아보다가 자연스럽게 ‘대안학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런데 일반 사립 대안학교는 당시 제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괜찮은 곳이 없을까… 계속 알아보다가 대안형 혁신학교가 눈에 띄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한 반면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학교 주변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일생을 서울 강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는 게 겁이 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학교가 용인 수지, 경기도 분당 경계에 있었고 그 인근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아파트만 있는 베드타운이더라고요.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아름다운가게를 나와 제 콘텐츠사업을 기획하던 중이었는데 사무실까지도 이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더라고요.
서울보다 월세도 싸고 훨씬 넓은 건물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면적이 늘어나니 사무실만으로 쓰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민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어볼까 싶었어요. 다만 ‘뭘’ 만드느냐가 중요했죠.
아파트촌으로 이뤄진 동네는 상대적으로 문화공간이 부족합니다.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울을 가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죠. 딸아이의 학교를 통해 알게 된 학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아쉬움을 저만 느끼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동네 주민 누구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평소 좋아하던 커피와 책을 기반으로 난생 처음 공간 기획에 도전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이디어와 도움을 주셨어요. 혼자 기획하고 조성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절약됐습니다. 그렇게 동네 카페이자 책방이자 아지트, ‘우주소년’이 탄생했습니다.
팬데믹 전, 서촌 역사책방과 콜라보로 진행한 북콘서트 ⓒ박우현
아마 서울에만 있었다면 ‘로컬’에 큰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 익숙한 곳이니까 특별히 동네의 특징이라든지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거든요. 제2의 삶의 터전이 된 ‘우주소년’에서 다양한 문화 탐구 활동을 하면서 ‘지역’, ‘로컬’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방을 열고 주민들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었어요. 팀을 만들고 동네 이름의 어원부터 파고들었습니다. 동네 곳곳 가게나 버스정류장에 ‘머내’란 단어가 정말 많이 쓰이는데 왜 ‘머내’라 부르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알고보니 옛 이름이 ‘원천遠川’이었던 거예요. 멀 원, 내 천. ‘원천동’의 순 한글 표기였던거죠. 현재 행정구역 상 수지 동천동, 분당 동원동이 원래는 한 동네였던 것도 알 수 있게 됐구요. 이렇게 하나 하나 파고드니 로컬이 가진 이야깃거리가 상당하더라고요.
탐구팀은 ‘머내여지도’라는 청년 주축의 역사 모임으로 발전해, 지금도 동네를 기억하기 위한 여러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 동네의 뿌리를 알아가며 주민들도 저도 우리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저는 이 경험을 토대로 더 넓은 범위의 로컬 콘텐츠들을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낯선 곳에 이사 와서 처음 걱정과는 달리 제 스스로도 큰 성장을 이룬 셈이죠.
Q. 우주소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주민들 역시 특별한 아지트로 여겼다구요! 어떤 추억들이 있나요?
맞습니다. 단순한 책방을 넘어 북콘서트, 지역 스터디, 토론을 주기적으로 하는 이야기의 장이 되니까 점점 참여하는 인원이 늘었고 외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다보니 유지 관리 자체가 힘든 순간이 오더라고요.
우주소년을 열고나서 4년쯤 지나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이제는 닫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구요. 그런데 오시는 분마다 “이렇게 닫을 순 없다”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는 거예요. 만감이 교차하던 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시작됐습니다.
오셨던 분들, 좋은 기억을 가지신 분들 너나 할 것 없이 50만 원, 100만 원 아낌없이 모아주시면서 우주소년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동네의 아지트를 지켜낸 거죠. 우주소년이 온전히 마을의 것이 되면서 저는 운영에선 물러나게 됐지만 모두를 위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청년협동조합이 주민들과 협력해서 우주소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지역 청년들이 ‘갭이어’를 활용하기 좋은 구조 또한 만들어진 거죠. 수지구청과 관내 학교들도 우주소년을 지원해주고 있고요.
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나니 ‘지역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습니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물리적인 공간의 재배치나 리모델링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정립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혼자 했다면 몰랐을 텐데 주민들이 다같이 관심을 가졌기에 그 가치들을 깨닫을 수 있었어요.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들에겐 이 아파트촌이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거든요. 그걸 알기에 많은 분들이 작은 마을 커뮤니티를 지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당장 이익만 생각했다면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일들이었죠.
이 멋진 분들과 수많은 추억을 함께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대책없이(?) 벌였던 일들인데요. 한 번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란 책을 읽고 주민끼리 북토크를 하다가 저자를 직접 모시고 북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이 책이 일본 도서라는 걸 알았음에도 내용이 좋은 나머지 그런 제안이 나왔던 거죠.
작은 동네 책방에서 무슨 힘으로 일본의 유명 작가를 모실 수 있겠나 싶어 차츰 잊어가던 중 반전이 펼쳐졌습니다. 주민 중 한 분이 일본에 출장을 간 김에 직접 저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섭외를 한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 와타나베 씨로부터 긍정적 답변이 왔고요. 다같이 즐겁게 읽은 책이라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습니다. 비행편, 숙박 경비도 걱정이었고 참여를 원하는 분들을 모두 초대하기엔 우주소년 공간이 너무 작았거든요.
그때도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저자 초빙 비용을 모았습니다. 인근 학교는 일반인들에게도 강당을 열어 장소를 제공해주었고요.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북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책의 배경이 된 다루마리 빵집을 탐방하는 투어도 만들었어요. 투어 안에서 프로그램을 늘려가며 꽤 오랜 기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와타나베 씨와 연락을 이어가며 로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와타나베 부부와 박우현 편집장 ⓒ박우현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박우현
Q. 로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셨는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나 만들어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리제너레이션 사업이에요. 지역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새롭게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 앞서 소개한 와타나베 씨 역시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아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책에 풀어냈던 건데요.
팬데믹 전, 한창 투어를 진행할 때 저한테 제안을 하나 하더라구요. “자주 오는 만큼 이 마을의 남는 건물을 구입해서 탐방대 숙소로 사용하는 게 어떻겠냐.” 실제로 작은 지역이라 그런지 관리가 잘된 정갈한 고택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한다든지. 다만 아쉬운 건 ‘지속성’이에요. 새로 마을을 만들었지만 정작 찾아오는 사람은 적은 곳도 많으니까요.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가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 세대가 로컬의 청년마을에 가서 단순한 여행이 아닌 ‘한달살기’같은 개념으로 쉼과 삶을 누려보는 거죠. 관광을 넘어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로컬이 배경이 아닌 주제가 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웹드라마를 기획해보고 있는데요. 로컬에 관심도 없고 도시에서의 생존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던 한 인물이 삶의 큰 실패를 경험하고 로컬로 내려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장르는 로맨틱코미디가 될 것 같은데 아직 구상 중이니 스포일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Q.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다방면에 재주 많은 제너럴리스트가 떠오르는데요! 꿈 많고 하고 싶은 일 많은 50+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너럴리스트라고 멋지게 이야기해주셨지만 사실 제 나이를 잊고 살다 다양한 것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선 “너도 이제 나이 들었다. 새로운 거 그만해”라고 하는 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떠나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중년은 자녀와 가족, 일에 집중하다가 정작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잊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사회의 환경과 분위기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만들기도 했고요. 이런 상황에 제가 감히 “인생 2막, 새로운 삶을 도전해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분은 글을 써보고 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분은 여행을 다녀보셨으면 좋겠어요. 작은 시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랑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어서요. 같이 늙어가는 동료, 동지, 친구들… 인생을 같이 갈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맹목적으로 앞만 보기보다 옆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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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과 사람에 진심인 박우현 편집장님!
앞으로도 다양한 로컬 콘텐츠로
또다른 이야기 공간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 제공
박우현 님 인스타그램
@ujooso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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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