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에겐 최고의 커뮤니티, '다목적 사랑방'
- 기억 속으로 사라지다 뉴트로 감성 입고 다시 부활
- 수도권에서 갈 수 있는 ‘진입장벽 낮은’ 다방
‘이야기를 나누거나 쉴 수 있도록 꾸며 놓고 차나 음료 따위를 판매하는 곳’
어떤 단어의 사전적 정의일까. 뜻만 보면 별 의심없이 '카페'를 떠올릴테지만 아니다. 요즘 세대에겐 을지로나 영화에서 겨우 접해봤을 공간이자 어쩌면 ‘집 구하는 앱’으로 더 잘 알려진 듯한 이 단어, 바로 '다방'이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다방은 ‘커뮤니티’ 그 자체였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최신 정보는 물론 정을 나누기도 했던 다목적 사랑방. 수많은 카페가 골목상권을 점령한 현재, 그럼에도 구도심 곳곳에서 다방을 찾아볼 수 있는 건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 때문이 아닐까.
끝날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 지치는 시기엔 익숙한 듯 낯선 곳에 가보는 것도 소소한 일탈이 될 것 같다. 이번 달 나의 작은 여행지는 다방으로 정했다. 집과 가까운 수원 남문시장의 수많은 다방들 중 최근 리모델링하며 진입장벽을 한껏 낮춘 ‘송학다방’을 방문했다.

수원 남문시장 청년몰에 위치한 송학다방의 간판




수원 남문시장 청년몰 2층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 가니 깔끔하게 정리된 송학다방의 외관이 드러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카페 테이블을 차지한 많은 손님에 압도 당했다. 카운터에 사장님 한 분이 모든 주문을 혼자 받고 계셨다.
“쌍화차 한 잔 주세요.”
- 달걀 노른자도 드릴까요?
"네!"
- 자리 앉아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계피, 당귀 등 한약재를 달여 검은 탕에 여러 견과류가 들어간 걸쭉한 음료, 쌍화차. 아버지가 감기 기운 있을 때마다 드시곤 했던 ‘쌍화탕’으로 간접 경험만 해봤을 뿐, 직접 다방에서 주문하고 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한가해진 다방 모습
그나저나 이 많은 손님을 혼자 응대하면서 직접 갖다주시기까지 하다니… 개인 카페에 더러 있는 경우지만 매장도 꽤 넓고 손님도 많은데!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주식창을 열어본 찰나, 그새 쌍화탕을 가져다주시는 사장님. 스피드가 남다르시다.
내 주식이 더 걱정이구나. 하하하.

쌍화차 한상 차림
노른자 첨가 여부를 물어보실 때 당당히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것마저 처음이라 선뜻 입에 넣기가 쉽진 않았다. ‘많이 비리진 않으려나?’ 너무 대놓고 망설인 건지 사장님이 오셔서 “노른자를 스푼으로 떠서 한입에 드시고 탕을 마시면 훨씬 맛있어요” 라고 알려주셨다.



사장님의 말씀에 힘입어 한입에 먹어보았다. 고소하고 쌉쌀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탕에 있는 잣, 호박씨, 호두도 떠먹었다. 올겨울 제대로 된 몸보신을 한 적이 있던가. ‘원기 충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주식창 덕분에 겨울쿨톤이 됐던 안색이 다시 봄웜톤으로 돌아왔다. 압도적 풍미.


아낌없이 들어간 고명들과 달콤쌉싸름한 탕. 첫 걱정과 달리 순삭했다. 하기사 내가 못먹는 게 있긴 했던가. 말끔히 비워낸 잔을 직접 가져다드리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어 대화를 시도하려는 순간 연달아 방문하는 손님에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나왔다.
비교적 한가한 오전, 한 번 더 방문해 겨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Q. 건물도 내부도 깔끔하고 쾌적하다. 언제부터 열었는지?

고은자 전 대표가 받은 표창장들.
1979년에 열었던 송학다방을 우리 시어머님이 1988년에 인수하셨다. 그렇게 33년 정도 운영을 하시다가 작년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건강하게 잘 지내오셨기에 가족 모두가 당황했고, 오랜 기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 다방 문은 닫아두어야 했다. 누구도 물려받을 준비가 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문이 닫혔는데도 찾아와서 위로를 건네시던 단골 손님들이 더 이상 쉬러 올 곳이 없다는 게 아쉽기도 했고, 시어머니가 30년 넘게 열심히 일해온 역사의 현장을 마음 속에만 묻어두기엔 후회가 많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들를 수 있도록 자동문과 통창을 내고, 내부의 인테리어도 요즘 카페처럼 바꿔서 지난해 봄 다시 문을 열었다. 소파, 테이블, 식기 등 오래 써도 그 멋이 묻어있는 소품들은 그대로 두었다.


통창과 안에서 바라본 성곽뷰


옛날 테이블과 소파 그대로 사용 중이다

테이블 곳곳 보이는 세월의 흔적

고은자 전 대표가 직접 쓰던 전화기
재개장 후 기존의 단골들도 많이 찾아오시지만 요즘은 청년층도 호기심에 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작은 잔에 나오는 다방커피 하나에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닫지 않길 잘 했다는, 잘 이어 받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Q. 손님들이 한번에 몰리더라. 이 많은 인원을 혼자서 다 응대하는지.
그렇다. 그래서 영업 시간을 다른 카페보다 좀 짧게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6시까지. 그때 주로 어른들, 단골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 시간만큼은 절대 사수한다.
재개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럼프가 왔었다. 많은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혼자서 모든 음료를 제조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초반엔 맛 때문에 컴플레인을 듣기도 하고 사이사이 무례한 손님을 맞아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손님들도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적응을 해주셨고 며느리라는 걸 알고나선 더 신경써주려 하는 분도 있다.
요즘은 힘들지만 기쁘기도 하고 정신없지만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Q. 카페와 다른 ‘다방’만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커피 종류부터 다르다. 흔히 어른들은 목적어 없이 “둘둘둘로 해주세요”라고 주문하는데 이는 설탕, 프림, 인스턴트커피를 각 두 스푼 넣은 ‘다방커피’를 달라는 뜻이다. 인스턴트커피가 ‘알갱이’같이 생겨서 ‘알커피’라 부르기도 한다.

가운데 인스턴트커피가 '알커피'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맥심 믹스커피와는 또 다르다. 조금 더 쌉쌀한 감칠맛이 돈다. 처음 들어본 청년들도 많겠지만 어른들 사이에선 아메리카노보다 핫한 메뉴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서 드립커피도 함께 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우리가 먹는 아메리카노를 그리 선호하진 않는다. 혹여라도 드시는 분은 스타벅스 숏 사이즈보다 작은 잔에 반 샷 조금 안되는 양을 넣은 것을 드신다.

옛날식 작은 잔
우리가 연하게 마시는 것보다 ‘더 연하게’ 내려 드려야 한다.
분위기 역시 다르다. 우리 가게도 현대식 인테리어를 해두긴 했지만 정서는 옛 것 그대로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주시는 단골도 있고, 장 보고 나서 짐가방을 맡겨두고 일 보러 가는 분도 있고. 신사적 농담으로 온 가게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분들도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보단 따뜻하고 부드럽고 정겨운 분위기랄까. 다방만이 가진 특징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Q. 수원에서만 오랜 시간 지내왔다고... 수원 노포의 매력은 뭘까.
수원은 노포가 정말 많은 도시다. 한국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문을 열었던 가게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승계’를 참 잘하는 것 같다. 수많은 갈비 노포 중 하나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 운영하고 있다. 그 친구도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청년들이 이어갈 때 전통은 지키면서도 새로운 서비스와 품질을 도입하려 노력하는 것도 수원 노포들의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수원의 도시 규모가 커져서 광교를 필두로 상권이 사방팔방 뻗어 나가는 상황이지만 예전엔 모두 남문시장, 즉 팔달문(남문의 정식 명칭) 근처에 몰려 있었다. 외지인에게도 유명한 수원 통닭골목이라든가 주단가게들, 다시 부흥하는 행궁동 인근까지도.

송학다방 옛 단골이 기증한 수원의 과거 사진들
잘 알려지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는 곳들을 보면 분위기는 유지하되 서비스는 트렌드에 맞게 바꾸어 가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곳도 많다. 팔달문 가장 가까운 곳인데도 한 블럭 전체가 가게 문을 닫은 데도 있다. 남문시장의 고질적 문제는 주차할 곳이 없다는 것.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기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보완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좀 더 나아진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남문시장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 운영 계획이 있다면?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 같아 시도해보진 못했지만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볼까 생각중이다. 옛맛이 그리운 데도 바쁜 탓에 드시러 오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외에는 사실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운영 인원이나 시간을 늘리는 게 아직까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 다방을 좋아해주시고 직접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정성을 다 하고 싶다.
단골 어른들에겐 그들만의 커뮤니티로, 청년들에겐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컨디션 관리도 잘 하고 싶다.

송학다방 2대 대표 임선화 사장님
혼자서도 잘 노는 프로혼밥러로서 국내 카페는 웬만큼 가봤다고 자부했지만 ‘다방’은 늘 접근 불가의 영역이었다. 간판만 봐도 왠지 <범죄도시>의 ‘장첸’이 떠오르고 문을 연 순간 모두가 ‘니 어디서 왔니’라고 몰아붙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편협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점차 잊혀 가는 것의 명맥을 잇기 위해, 모두의 커뮤니티를 위해 애쓰는 분들의 노고는 어떤 의미로도 정의내릴 수 없다. 진정한 가치는 그 현장에 가야 느낄 수 있다는 걸 새삼 또 깨닫는다.
오시는 분들 한 명, 한 명 눈마주치고 정성을 다 해 대하는 임선화 사장님의 정성 만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송학다방. 사장님의 바람대로 찾아간 손님들에게 그저 편한 공간이 되어주길 바란다.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
수원 #송학다방 위치정보
송학다방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255번길 6
보너스팁 : 쌍화차 만드는 과정
1. 잣 호두 등 고소한 견과류 준비

2. 온수에 달걀을 담가 서서히 익힌다
(기호에 따라 넣지 않아도 된다)

3. 한약재 등을 달여 만들어놓은 탕을 한 번 더 가열하고 (적당한 온도를 찾는 것이 중요)


4. 잔에 미리 넣어뒀던 견과류 위에 탕을 붓는다

5. 친한 친구와 함께 즐긴다.


늘 정겨운 송학다방 🥰

베이비붐 세대에겐 최고의 커뮤니티, '다목적 사랑방'
- 기억 속으로 사라지다 뉴트로 감성 입고 다시 부활
- 수도권에서 갈 수 있는 ‘진입장벽 낮은’ 다방
‘이야기를 나누거나 쉴 수 있도록 꾸며 놓고 차나 음료 따위를 판매하는 곳’
어떤 단어의 사전적 정의일까. 뜻만 보면 별 의심없이 '카페'를 떠올릴테지만 아니다. 요즘 세대에겐 을지로나 영화에서 겨우 접해봤을 공간이자 어쩌면 ‘집 구하는 앱’으로 더 잘 알려진 듯한 이 단어, 바로 '다방'이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다방은 ‘커뮤니티’ 그 자체였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최신 정보는 물론 정을 나누기도 했던 다목적 사랑방. 수많은 카페가 골목상권을 점령한 현재, 그럼에도 구도심 곳곳에서 다방을 찾아볼 수 있는 건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 때문이 아닐까.
끝날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 지치는 시기엔 익숙한 듯 낯선 곳에 가보는 것도 소소한 일탈이 될 것 같다. 이번 달 나의 작은 여행지는 다방으로 정했다. 집과 가까운 수원 남문시장의 수많은 다방들 중 최근 리모델링하며 진입장벽을 한껏 낮춘 ‘송학다방’을 방문했다.
수원 남문시장 청년몰에 위치한 송학다방의 간판
수원 남문시장 청년몰 2층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 가니 깔끔하게 정리된 송학다방의 외관이 드러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카페 테이블을 차지한 많은 손님에 압도 당했다. 카운터에 사장님 한 분이 모든 주문을 혼자 받고 계셨다.
“쌍화차 한 잔 주세요.”
- 달걀 노른자도 드릴까요?
"네!"
- 자리 앉아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계피, 당귀 등 한약재를 달여 검은 탕에 여러 견과류가 들어간 걸쭉한 음료, 쌍화차. 아버지가 감기 기운 있을 때마다 드시곤 했던 ‘쌍화탕’으로 간접 경험만 해봤을 뿐, 직접 다방에서 주문하고 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한가해진 다방 모습
그나저나 이 많은 손님을 혼자 응대하면서 직접 갖다주시기까지 하다니… 개인 카페에 더러 있는 경우지만 매장도 꽤 넓고 손님도 많은데!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주식창을 열어본 찰나, 그새 쌍화탕을 가져다주시는 사장님. 스피드가 남다르시다.
내 주식이 더 걱정이구나. 하하하.
쌍화차 한상 차림
노른자 첨가 여부를 물어보실 때 당당히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것마저 처음이라 선뜻 입에 넣기가 쉽진 않았다. ‘많이 비리진 않으려나?’ 너무 대놓고 망설인 건지 사장님이 오셔서 “노른자를 스푼으로 떠서 한입에 드시고 탕을 마시면 훨씬 맛있어요” 라고 알려주셨다.
사장님의 말씀에 힘입어 한입에 먹어보았다. 고소하고 쌉쌀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탕에 있는 잣, 호박씨, 호두도 떠먹었다. 올겨울 제대로 된 몸보신을 한 적이 있던가. ‘원기 충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주식창 덕분에 겨울쿨톤이 됐던 안색이 다시 봄웜톤으로 돌아왔다. 압도적 풍미.
아낌없이 들어간 고명들과 달콤쌉싸름한 탕. 첫 걱정과 달리 순삭했다. 하기사 내가 못먹는 게 있긴 했던가. 말끔히 비워낸 잔을 직접 가져다드리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어 대화를 시도하려는 순간 연달아 방문하는 손님에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나왔다.
비교적 한가한 오전, 한 번 더 방문해 겨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Q. 건물도 내부도 깔끔하고 쾌적하다. 언제부터 열었는지?
고은자 전 대표가 받은 표창장들.
1979년에 열었던 송학다방을 우리 시어머님이 1988년에 인수하셨다. 그렇게 33년 정도 운영을 하시다가 작년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건강하게 잘 지내오셨기에 가족 모두가 당황했고, 오랜 기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 다방 문은 닫아두어야 했다. 누구도 물려받을 준비가 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문이 닫혔는데도 찾아와서 위로를 건네시던 단골 손님들이 더 이상 쉬러 올 곳이 없다는 게 아쉽기도 했고, 시어머니가 30년 넘게 열심히 일해온 역사의 현장을 마음 속에만 묻어두기엔 후회가 많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들를 수 있도록 자동문과 통창을 내고, 내부의 인테리어도 요즘 카페처럼 바꿔서 지난해 봄 다시 문을 열었다. 소파, 테이블, 식기 등 오래 써도 그 멋이 묻어있는 소품들은 그대로 두었다.
통창과 안에서 바라본 성곽뷰
옛날 테이블과 소파 그대로 사용 중이다
테이블 곳곳 보이는 세월의 흔적
고은자 전 대표가 직접 쓰던 전화기
재개장 후 기존의 단골들도 많이 찾아오시지만 요즘은 청년층도 호기심에 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작은 잔에 나오는 다방커피 하나에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닫지 않길 잘 했다는, 잘 이어 받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Q. 손님들이 한번에 몰리더라. 이 많은 인원을 혼자서 다 응대하는지.
그렇다. 그래서 영업 시간을 다른 카페보다 좀 짧게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6시까지. 그때 주로 어른들, 단골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 시간만큼은 절대 사수한다.
재개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럼프가 왔었다. 많은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혼자서 모든 음료를 제조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초반엔 맛 때문에 컴플레인을 듣기도 하고 사이사이 무례한 손님을 맞아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손님들도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적응을 해주셨고 며느리라는 걸 알고나선 더 신경써주려 하는 분도 있다.
요즘은 힘들지만 기쁘기도 하고 정신없지만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Q. 카페와 다른 ‘다방’만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커피 종류부터 다르다. 흔히 어른들은 목적어 없이 “둘둘둘로 해주세요”라고 주문하는데 이는 설탕, 프림, 인스턴트커피를 각 두 스푼 넣은 ‘다방커피’를 달라는 뜻이다. 인스턴트커피가 ‘알갱이’같이 생겨서 ‘알커피’라 부르기도 한다.
가운데 인스턴트커피가 '알커피'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맥심 믹스커피와는 또 다르다. 조금 더 쌉쌀한 감칠맛이 돈다. 처음 들어본 청년들도 많겠지만 어른들 사이에선 아메리카노보다 핫한 메뉴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서 드립커피도 함께 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우리가 먹는 아메리카노를 그리 선호하진 않는다. 혹여라도 드시는 분은 스타벅스 숏 사이즈보다 작은 잔에 반 샷 조금 안되는 양을 넣은 것을 드신다.
옛날식 작은 잔
우리가 연하게 마시는 것보다 ‘더 연하게’ 내려 드려야 한다.
분위기 역시 다르다. 우리 가게도 현대식 인테리어를 해두긴 했지만 정서는 옛 것 그대로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주시는 단골도 있고, 장 보고 나서 짐가방을 맡겨두고 일 보러 가는 분도 있고. 신사적 농담으로 온 가게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분들도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보단 따뜻하고 부드럽고 정겨운 분위기랄까. 다방만이 가진 특징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Q. 수원에서만 오랜 시간 지내왔다고... 수원 노포의 매력은 뭘까.
수원은 노포가 정말 많은 도시다. 한국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문을 열었던 가게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승계’를 참 잘하는 것 같다. 수많은 갈비 노포 중 하나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 운영하고 있다. 그 친구도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청년들이 이어갈 때 전통은 지키면서도 새로운 서비스와 품질을 도입하려 노력하는 것도 수원 노포들의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수원의 도시 규모가 커져서 광교를 필두로 상권이 사방팔방 뻗어 나가는 상황이지만 예전엔 모두 남문시장, 즉 팔달문(남문의 정식 명칭) 근처에 몰려 있었다. 외지인에게도 유명한 수원 통닭골목이라든가 주단가게들, 다시 부흥하는 행궁동 인근까지도.
송학다방 옛 단골이 기증한 수원의 과거 사진들
잘 알려지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는 곳들을 보면 분위기는 유지하되 서비스는 트렌드에 맞게 바꾸어 가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곳도 많다. 팔달문 가장 가까운 곳인데도 한 블럭 전체가 가게 문을 닫은 데도 있다. 남문시장의 고질적 문제는 주차할 곳이 없다는 것.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기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보완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좀 더 나아진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남문시장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 운영 계획이 있다면?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 같아 시도해보진 못했지만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볼까 생각중이다. 옛맛이 그리운 데도 바쁜 탓에 드시러 오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외에는 사실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운영 인원이나 시간을 늘리는 게 아직까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 다방을 좋아해주시고 직접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정성을 다 하고 싶다.
단골 어른들에겐 그들만의 커뮤니티로, 청년들에겐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컨디션 관리도 잘 하고 싶다.
송학다방 2대 대표 임선화 사장님
혼자서도 잘 노는 프로혼밥러로서 국내 카페는 웬만큼 가봤다고 자부했지만 ‘다방’은 늘 접근 불가의 영역이었다. 간판만 봐도 왠지 <범죄도시>의 ‘장첸’이 떠오르고 문을 연 순간 모두가 ‘니 어디서 왔니’라고 몰아붙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편협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점차 잊혀 가는 것의 명맥을 잇기 위해, 모두의 커뮤니티를 위해 애쓰는 분들의 노고는 어떤 의미로도 정의내릴 수 없다. 진정한 가치는 그 현장에 가야 느낄 수 있다는 걸 새삼 또 깨닫는다.
오시는 분들 한 명, 한 명 눈마주치고 정성을 다 해 대하는 임선화 사장님의 정성 만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송학다방. 사장님의 바람대로 찾아간 손님들에게 그저 편한 공간이 되어주길 바란다.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
수원 #송학다방 위치정보
송학다방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255번길 6
보너스팁 : 쌍화차 만드는 과정
1. 잣 호두 등 고소한 견과류 준비
2. 온수에 달걀을 담가 서서히 익힌다
(기호에 따라 넣지 않아도 된다)
3. 한약재 등을 달여 만들어놓은 탕을 한 번 더 가열하고 (적당한 온도를 찾는 것이 중요)
4. 잔에 미리 넣어뒀던 견과류 위에 탕을 붓는다
5. 친한 친구와 함께 즐긴다.
늘 정겨운 송학다방 🥰